(지금은 간호윤 실학으로 읽음) (30) 정치적 혐오, 누구를 위한 정치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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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23.03.26 15:18
- 편집 2023-03-26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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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정치’가 없다
“교수의 ‘정치적 발언’이 불편하다는 불만(?)이 있었다. 자제 부탁드립니다.” 대학 당국의 메시지다. 개강 3주 만에 사무실에 신입생 한 명이 들이닥쳤다. 수업시간에 만든 ‘정치적 발언'(?) 때문이다. 이것은 “대학의 정치는 작은 길이며 금기 사항”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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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는 글을 쓸 때 주어 ‘I’를 피합니다. 학습이 개별(I) 지식의 행위에서 “우리”의 보편성, 즉 1인칭 복수, 즉 위조 가능성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서에서는 1인칭 단수 “I”를 사용합니다. ‘정치적 발언’의 운율을 변명하자면, 반에서 ‘나’는 정당을 지지한 적이 없다. 그 시대의 서민들과 사회의 공적 원한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나는 조선후기 실학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저술하는 학자이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제가 수업시간에 이야기하는 정치는 “이 나라를 운영할 대학생으로서 우리 삶의 분모인 정치를 늘 의식해야 한다”는 만트라입니다. 사람들이 품위 있게 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상호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정치와 거리가 없습니다. 모든 일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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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르치는 과목은 문제 해결 쓰기입니다. 대학생으로서 꼭 필요한 교양과목입니다. “문화”는 틀에 박힌 교양 인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교육입니다. “문제”는 답변이 필요하거나 토론, 토론 또는 연구를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문제”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글쓰기는 더 어렵다. 누가 이 어려운 과정을 수행합니까? 나야’. “남보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남들과 다르게 쓰라.”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만트라처럼 외우게 한다. 이것이 기록의 첫째 계명입니다. 남들과 다른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쓰기 학생의 주관성이 고정되어야 한다. 주관성이 강할 때만 보는 것과 듣는 것의 한계를 인용하며 다른 관점에서 글을 쓴다. 의견은 논리와 합리성이 있는 해결책입니다. “나” 없이는 문제도, 해결책도, 글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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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의 본성(개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의 삶이 어우러지는 것)에 있다. 인간의 범위는 바퀴살처럼 “I” 주위로 360도 방사됩니다. 문제를 찾으려면 사람을 꿰뚫어 봐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는 인정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한 대학생이 교수에게 ‘정치’에 대해 말하지 말고 ‘주관적 견해’를 자제하라고 말했다. 대학은 대학입니다. 국정교과서나 공인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초·중등 교육기관이 아니다. 대학은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과학이론과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지성을 함양하는 곳이다. 교수는 과학적 성실성과 미래지향성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연구와 연구를위한 성소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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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이상은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 즉 아름다운 대통합의 세계를 지향한다. 건국시대에도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같은 사람들이 검과 같은 말과 경전으로 왕실 정치를 공부하고 따랐다. 이 오리엔테이션의 길은 배움의 길이며 배운 자의 길입니다. 하지만 교수님께 정치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정치외교연구원’은 아예 폐지해야 하지 않나. 여기가 대학교야? 타임머신을 타고 박정희나 전두환 시대로 돌아간 건 아닐까? 나는 고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35년 동안 대학에서 가르쳤으니 35년 전부터 정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처음으로 이런 상황에 직면한 것은 작년이었습니다. 올해를 돌이켜보면 이는 무례한 대학생들과 오만방자한 교수들 사이의 일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인 것 같다. 작년에 갑자기 정치 이야기를 접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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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일이?’ 고심 끝에 나온 답은 우리 정치인들과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정치판이었다.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黨同伐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위해 내 편과 사방을 가르는 것), 지역과 계층, 심지어 성별까지 나누었다. “자식간에 정치 얘기 하지 말라”는 기성세대의 격언이다. 그러고 보니 카톡방과 친구들 사이에서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이 나라의 불문율이 됐다. 이 정치적 공포증은 누구의 돈이며 누가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정치얘기 안하면 이제부터 시민이 되는거 정말 모르세요? 정치에 대한 혐오를 조장해 우민을 만든다는 것을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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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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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독일 교육을 보라. 당신은 “성교육”을 “정치 교육”이라고 부릅니다. 프로이트는 그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인간을 “초자아(사회나 이전 세대가 획득한 사회적 의식)”, “자아(주체로서의 나)”, “리비도(성적 욕망과 식욕)”로 이해했다. 리비도를 느낄 때 자아가 형성됩니다. 초자아가 리비도를 부정할 때 자아는 죄의식에 빠지고 정체성과 주체성을 상실한다. 반대로 리비도가 인정되면 자아가 강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리비도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원으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나약한 자아”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필요한 ‘강인한 자아’를 갖기 위해 ‘성교육=시민교육’으로 연결했다. 또 민주시민으로서의 ‘올바른 정치의식’을 갖출 수 있도록 초등학교 때부터 ‘항쟁교육’을 실시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정치적 행동과 집회를 보장하고, 학교와 국가로부터 보호하고, 현 정치를 반성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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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정치인과 기성세대의 ‘초자아’가 강한 나라다. “저항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에서 “정치”가 금기시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조지 오웰의
/후헌(休軒) 교윤(簡鎬允 문학박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 · 고전독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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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간호윤 실학으로 읽음) (30) 정치적 혐오, 누구를 위한 정치인인가? -인천일보
“교수의 ‘정치적 발언’이 불편하다는 불만(?)이 있었다. 자제 부탁드립니다.” 대학 당국의 메시지다. 개강 3주 만에 사무실에 신입생 한 명이 들이닥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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